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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고

7년의 사기결혼

교회의 신도라는 여자들이 웃기네 Y씨의 부인은 우리 집사님인데 무슨 소리냐? 남의 집안 파탄내지 말고 어서 돌아가라며 저를 교회 마당밖으로 끌어냈습니다. 그들은 제말을 들으려하지않고 무슨 벌레를 보는듯 더럽다는 눈으로 저를 쳐다보고 서 있었습니다. 문밖 출입을 할수없게 만든 남편으로 인해, 정식으로 결혼한 저는 타인들의 눈에 불륜녀로 비춰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 코리안 저널 신문고 정리 (주디 하트만 )






 

많은 분들의 사연을 읽어보면 미국에 온 여성들의 남편으로 부터 받는 학대에 대한 사연을 접하는 기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의 주인공이 제가 될줄은 꿈에도 상상해 볼 수 없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알아보던 중 저는 미국에서 공인 중계사로 일한다는 3년 전 첫 결혼에 실패했다는 지금의 남편을 소개받게 되었습니다


서로의 만남은 그리길지 않았으나 매일 전화로 온라인으로 미래를 만들며 사랑과 믿음을 쌓았습니다. 첫 결혼에 실패한 후 그는 맘을 많이 다친듯했습니다그러나 그는 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아픔을 치유할수 있었다며 저를 약혼 비자로 초청했습니다. 미국에 도착한지 15일만에 결혼을 한 후 임시 영주권을 기다리며 모진 고통을 당했지만 그 고통은 지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였던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남편과의 악연은 그리도 자상하고 저를 끝없이 아껴줄것 같던 남편은 결혼이후 너무도 다른 사람으로 바뀌면서 시작 되었습니다. 그는 결혼 초 생활비를 주는 것은 고사하고 의처 증세까지 심해 제가 일을 하는 것도 동네에 나가는 것조차 반대해 운전 면허조차 딸 수 없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빨리 미국에 들어오라며 다정하게 굴던 사람이 결혼 후 6개월쯤되자 아예 나가라! 이혼하자며 다그칠땐 정말이지 숨이 멈추는 듯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남편은 법원에 이혼서류를 제출한다며 엄포를 놓기도 했습니다


저는 절대 이혼은 할수없다. 다시 잘해보자고 매달리지만 남편은 미국에서는 한국처럼 한쪽의 동의가 있어야 이혼되는 것이 아니다. 너의 의사와 관계없이 내가 이혼서류를 제출하면 된다며 소리를 지르기 다반사였던 세월이었습니다.

 

남편은 아무런 대책없이 무조건 나가라고 했지만 당시 자립할수 있는 능력이 되질 않는 제 상태를 뻔히 알면서도 막무가내인 남편이 정말 밉기만 했습니다. 임신 5개월의 몸으로 저는 제가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가에 대해 방향을 잡을 수도 확신을 세울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혈육이라고 하나뿐인 언니는 너에게 문제있는 것은 아닐까라며 믿을수가 없다고 만합니다. 언니는 그렇게 잘해주던 사람이 실제 살아보고 이건 아니구나 하는 경우가 많다며 되려 저를 이해 시키려 노력했습니다.

 

저 또한, 운전을 하지못해 어디 나가 다닐수도 없고 이곳사정에 어두워 혼자서 아무것도 할수 없는 처지라 남편에 말에만 의지할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남편이 제게 왜? 이토록 잔인한지 이유를 찾기위해 매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남편은 저와 결혼을 하는 날부터 어떤여자는 시민권자랑 결혼하려고 얼마를 썻다더라는 말을 종종 했습니다. 어떤 날은 돈이 필요한데 한국에서 구해올 곳은 없냐?”며 다그치기도 했습니다. 남편의 변심에는 제가 가진것이 별로 없어 경제적으로 크게 도움이 되지못하는 것이 문제가 되던것 같습니다.

 

제가 남편의 강요에 못이겨 이혼을 눈앞에 두고 고통스러워하자. 언니는 대출을 내 돈을 마련할테니 남편과 상의해 가정을 지킬수 있는 길을 모색해 보라고 권유했습니다


남편은 돈이 손에 쥐어지자 그제서야 미안해 그간 내가 미쳤었다. 친구를 위해 보증을 섰는데 친구가 도망을 가면서 내가 그빚을 떠안게 됬어. 게다가 그로인해 신용까지 엉망이 되어버릴 지경이 되다보니 당신에게 본의 아니게 못되게 굴었다. 하지만 거의 빚을 많이 갚은 상태이니 걱정 말아라며 잘못을 빌었습니다.  

 

전 그때 모든 고난과 역경이 이제는 우리앞엔 다신 없을 것이라 믿고 싶었습니다. 남편은 고심끝에 한국에서 보내준 돈과 남편이 대출을 받아 집을 사자고 말했습니다. 집 계약을 하면서 남편은 공동명의로 하자고 했고 저 또한 그가 시키는 대로 계약서에 사인을 했습니다. 막상 영어로 된 계약서를 보니 알기도 힘들었고 남편 말을 믿고 사인을 했습니다


그후로 저희부부는 정말이지 안정된 가정을 꾸리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빚을 거의 갚았다는 남편은 한국언니에게 대출금을 갚기위해 돈을 부쳐야 한다는 이유로 한달 생활비로 300달러를 주었을 뿐입니다. 공과금은 그나마 그가 내주었으나 남편은 바쁘다는 핑계로 일주일에 2~3번 집에 들어오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그나마 언니가 도와준 돈의 위력인지 남편은 제게 그나마 교회사람들의 도움으로 교회를 나가거나 부식거리를 사러가는 것을 허락하기 시작했습니다차츰 미국생활에 숨통이 트이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주변 사람들을 알기 시작해서 일까요? 언제인가부터 남편에 대한 소문이 제게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날은 제가 그의 아내이란 것을 몰라서인지 소문은 “Y씨 두번째 마누라가 재력가 딸이래”, “아 그 여자가 바람이 났다며 등등 터무니없는 소문 말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소문이 제 귀를 사로잡았습니다. “첫째 부인이 큰사업을 하는 데 Y씨가 친구 때문에 빚을 지고 부인 돈을 빚을 대신해 빼앗길까봐 위장 이혼을 하고 사기 결혼으로 두번째 마누라를 얻었대라는 신도들의 말이였습니다.

 

저는 너무도 당황해 제 일이 아닌냥 신도들을 붙잡고 열심히 묻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한 신도분이 “Y씨가 첫부인과 함께 다녔던 교회인데, 그 교회에서 몇 주 전에도 같이 교회에 온걸 봤다는 사람이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어떻게 해야할지 앞이 캄캄했습니다. 남편을 다그친들 진실을 말해줄것도 같지 않았습니다. “교회로 찾아가야지! 직접 눈으로 보고 아야기를 하자라고 맘을 먹은 저는 교회에서 안목이있는 분들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당신들 교회까지 빠지면서까지 다른교회에 그것도 남의 부부일에 끼어들기 힘들었던 탓이었겠지요. 한분의 도움으로 저는 택시를 불러 교회로 간 신도님께 아이를 그날 맡기고 남편이 다닌다는 교회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예배가 시작되었다며 그 교회는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성을 잃고 왈칵 눈물울 쏟아내며 내가 Y씨의 부인인데 남편을 만나러 왔다며 하소연했습니다. 그러자 그교회의 여신도 몇몇이 웃기네 Y씨의 부인은 우리 집사님인데 무슨 소리냐? 남의 집안 파탄내지 말고 어서 돌아가라며 저를 교회 마당밖으로 끌어냈습니다.

 

끌려나오며 분을 참지못해 울부짖는 저를 본 택시 기사님은 혀를 차며 저를 부축해 집으로 데려다 주셨지만 그들은 제 말을 들으려하지않고 무슨 벌레를 보는듯 더럽다는 눈으로 저를 쳐다보고 서있었습니다. 그토록 문밖 출입을 할수없게 만든 남편으로 인해 정식으로 결혼한 저는 타인들의 눈에 되려 불륜녀로 비춰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집에 돌아온 남편은 나를 못믿고 무슨 짓을 하고 다니냐?”며 되려 화를 냈습니다. 300달러! 아기 우유값과 기저귀 값을 제하면 정말이지 쌀과 부식거리를 사기도 빠듯한 액수입니다그렇게 힘들게 살기를 5, 그리고 저는 황당한 현실에 부딧쳐 도저히 견딜수가 없었습니다. 잠시 한국에 다녀오겠다며 아이를 데리고 언니네 집으로 향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아무도 모르는 미국에서 보다는 몇개월간 일하면 생활비에도 보탤 수있고 저 또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저희 모자가 한국생활을 할 때쯤 남편은 우리 모자를 찾아와 아이를 데리고 몰래 미국행을 감행했습니다.

 

남편이 아이를 데려간 것을 알고 전화를 하자 남편은 혼자 애까지 데리고 돈벌려고 애쓰는 것이 안쓰러웠다. 애를 데리고 오겠다면 당신이 힘들면서도 굳이 같이있겠다고 할까봐 말을 안했다. 내가 애를 맡고있을 테니 당신이 원하는 대로 기간을 연장해서 좀더 직장생활을 해라.”며 안심시켰습니다


저는 그의 말을 믿을 수없어 미국행 비행기표를 수소문한 끝에 6개월만에 미국땅을 다시 밟았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제가 6개월간 한국에서 머물러 결국 별거를 한 것이라며 합의 이혼소송을 해놓았습니다. 게다가 그로인해 아이조차 볼수 없도록 조취가 내려진 상태였습니다.

 

변호사는 이에 대해 당신 남편은 아이를 한국에 데려간 점을 이용해 법적인 문제를 삼은것 같습니다. 아이를 한국으로 데리고 간것이 납치행위로 간주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한국에 생활비를 벌려고 나간것이 아이를 볼수도 없는 이혼 소송에 말려 버리고 결국 생활비를 하겠다며 모은 돈은 결국 변호사 비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가족도 친구도 없는 미국에서 남편이 제기한 이혼소송으로 인해 약 6개월간 시달리고 있습니다. 남편은 합의를 해준다면 양육권은 조인하겠다. 그러나 양육비나 위자료를 청구한다면 아이를 포기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아이를 놓고 법정싸움을 지루하게 벌리며 영화속 화면이 돌아가듯 그가 제게 한일들이 마치 영화처럼 하나로 연결지어 떠오릅니다. 왜그리 나를 못살게 굴었는 지 왜? 교회사람들이 나를 끌어냈는지 말입니다. 그가 원하던 이혼이 빨리 이루어지지않고 언니가 대출까지 내주자 잠시 멈짓했던 남편과 전처의 사이


그러나 그간 동안에도 두사람은 교회에 손잡고 나가고 사람들의 앞에서 위선을 떨며 저를 맘껏 조롱한 것이었습니다. 지난 5년 동안 안되는 일을 왜그토록 매달렸는지 그가 죽이고 싶도록 미운만큼 제 자신을 용서할수 없습니다.

 

사랑이라고 그리고 나아질 것이라고 안고 온 세월…. 그세월이 나의 삶과 아들을 빼앗아 가려합니다. 자신들의 경제적 안정을 위해 한여자의 일생을 망친 Y씨와 그의 첫 부인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들 안위를 위해 한사람의 인생을 가지고 논, 당신들은 영원히 행복할수 있을까?”라고 말입니다

¨정리 주디하트만


코리안저널 본사 신문고에 연제되었던 기사는 미주 교민들의 억울한 사연을 의뢰받고 인터뷰해 사연을 실어 기사화한 실제 사연이였음을 알려드립니다.---별을 줍는 아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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